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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이 막 보급되던 시절, PC통신들도 덕분에 잠깐 특수를 누렸던 적이 있었다.
물론 무료라는 강점을 지닌 포털사이트들에 눌려 얼마 못 가 시장에서 도태되었지만 말이다.
 

PC통신들이 한참 잘 나갈 땐 무료 월간지 혹은 격월지를 발간했다.
대표적인 게 하이텔에서 발행한
<하이텔>(훗날 <꿈따라>로 제호 변경),
KT <Powwow>,
우측 상단은 PC통신사는 아니고 메일메거진 업체에서 발행했던 <EMAG>
요즘 대학가에서 배포되는 <대학내일>만큼 인기기 많았다.




<하이텔> 1999년 4월호.
56K 모뎀을 지원하는 01412 번호가 등장하기 전에 발행된 책자다.



메가패스가 가정용 상품이었다면 코넷은 PC방이나 업체를 위한 전용선 서비스였다.
당시 잘 나갔던 프로게이머 쌈장이 출연했던 광고가 생각난다.



당시 전화선 인터넷 유저에게는 월 1만원(부가세 포함 1만 1천원)짜리 PC통신 가입이 사실상 필수였다.
만약 PC통신을 가입하지 않고 사용한다면 전화요금 외에 분당 20원 정도의 정보이용료가 부과되었다;
천리안, 유니텔, 하이텔, 나우누리 이외에도 가입없이 무료로 제공되는 PC통신은 KT Powwow(파우와우).
하지만 Powwow는 웹이 아닌 텔넷기반 서비스였고, Powwow를 통해 인터넷을 접속해도 별도의 정보이용료가 부과된다.



Powwow에 기생했던 각종 인포샵 업체들.
이들은 IP라고도 불렀다.
당시엔 이런 업체들이 지금의 P2P사이트 역할을 수행했다.



당시에 인기가 많았던 VIVA 자료실.
요즘 출시된 PC를 갖고 타임머신을 타고 저 시절로 돌아가 이런 장사를 하면 대박 터뜨릴 듯.
"7테라바이트 이상의 방대한 자료를 보유한 자료실"



요즘은 보기 어려워진 CRT모니터와 그 친구들.
플로피 디스크도 시장에서 사장되었다.



<하이텔>은 <꿈따라>로 제호를 바꿨다.



하이텔 접속번호는 01432. 전화요금을 아끼려면 014XY 번호로 걸어야 했다.
하지만 한시적으로 시내전화 무제한 요금제가 등장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물론 전화선 인터넷 사용빈도가 대폭 줄어들면서 저 일반번호들도 하나둘씩 결번이 됐지만...



신지식인 1호로 이름을 날렸던 심형래 전 영구아트 사장.
이땐 이런 처지가 될 줄 아셨을까?



PC통신의 백미는 동호회.
동호회 때문에 PC통신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유저들이 많았다.
훗날 동호회 상당수가 반강제로 네이버, 다음카페로 이주했지만.


 

파우와우에서 발행했던 잡지. 참고로 지금도 전화모뎀으로 01412번에 접속하면 Powwow가 뜬다.



잡지의 구독자들 대부분은 대학생. 최근까지도 학교를 다녔던 02학번이 있었다는...



1541 콜렉트콜 광고.
예나 지금이나 주 고객은 군인.
(이제 군대에서도 휴대폰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저걸 쓰는 군인은 없을 듯하다)



밋밋한 익스플로러를 화려하게 변신시켜 주는 스킨 프로그램들.
그런데 자칫하다가는 컴퓨터를 오히려 더 느리게 만들어 버릴 수 있다.
(저 당시에는 예상하지 못했지만, 익스플로러도 퇴물이 되어 사라지는 시대가 왔다)



이런 것도 있었구나.
당시에는 포토샵 5.5와 6.0이 널리 쓰이고 있었다.



아직도 익숙한 이 광고. 지하철, 열차 안, 고속버스터미널 등 안 붙어있는 곳이 없었다.
KT가 완전히 민영화되기 전이라 한국통신(약자로 한통)이라는 사명을 사용했다.



'컴퓨터'를 '스마트폰'으로 바꿔도 여전히 통할 만한 광고.



인포샵에는 야시꾸리한 IP들이 있어서 문제가 되기도 했다.



윈도우 2000의 등장.
사실 윈도우 98의 후속작은 윈도우 Me이고, 윈도우 2000은 NT 4.0의 후속작이었다.



1999년 12월호 <Powwow>.



K6-2 400MHz 노트북이 무려 1백 40만원.

당시 펜티엄 MMX 233MHz CPU가 장착된 삼성 센스 600이라는 노트북이 있었는데,
요 기종이 데스크톱용 CPU를 사용하다 보니 AMD K6-2 450MHz를 끼우면 400MHz로 인식되었다.
당시 10만원 초반대 펜티엄MMX 노트북으로 3~40만원대 펜티엄2급 성능을 누릴 수 있는 셈.


 

ACDSee 2.4대 버전은 가볍고 빨라서 아직도 사용하는 사람이 꽤 많은데 리얼플레이어는 폭망.



<응답하라 1999>라는 드라마가 나온다면 절대 빠질 수 없는 소재 DDR패드.
이것 때문에 층간소음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순풍산부인과>에서도 관련된 에피소드가 방영되기도 했다.
DDR패드와 클론이 서로 궁합이 잘 맞는 듯.



옷로비 사건 청문회 당시 당사자 부인의 "미안합니다. 제가 좀 아파서..."를 성대모사해 단숨에 떴던 개그맨 김영철씨.



안정환 선수의 현역시절.



한때 메신저 프로그램의 본좌였던 ICQ. 하지만 국내에서는 버디버디와 MSN에 밀려 도태되었다.



HOT의 인기가 점차 식어가고 SES는 인기절정에 올랐던 시점.



웹 2.0이 등장하기 전에는 개인홈페이지가 블로그 역할을 했다.
요즘은 배우지 않아도 되지만 당시에는 개인홈페이지를 제작하기 위해서 나모웹에디터를 필수적으로 익혀야 했다.



010 통합 전 n016 광고. 당시 나의 소원은 폴더폰 획득.
한참 저런 휴대폰 목걸이가 유행이었던 적이 있었다.



인터넷 붐에 힘입어 메일매거진 서비스들이 등장했다. 물론 대부분 살아남지 못했지만...



메일매거진이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 한참 잘 나갔던 메일매거진 업체가 있었는데 이름이 기억이 나지 않네...



99년 처음 등장한 펜티엄3.
사진에 나온 펜티엄3는 초기형(카트마이)으로 펜티엄2와 별 차이가 없어서 혹평을 받았다.



한때 TV CF도 나왔던 것 같은데 지금은 사라진 사이트.



이 사이트도 지금은 문을 닫았다.



삼성에서 PC용 스피커를 만든 적도 있다.



입문서 광고.



윈도우7부터 사라진 번들 프로그램 아웃룩 익스프레스.
인터넷에 익숙하지 않았던 시절 이걸로 이메일을 보내려다 실패했다는...



박지윤이 <성인식>이라는 노래로 주가를 올릴 무렵인 듯.



안랩(당시 안철수연구소)에서 이런 것도 만들었다.
윈도우 98 SE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당시 출시되었던 상당수의 프로그램들이 'SE'라는 별칭을 달았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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